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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지만 늘봄학교를 반대하는 이유

Prunnnn 2023. 5. 2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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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현실 :: 부모님찬스 혹은 등하원 도우미

저는 애를 둘 낳고 복직한 워킹맘입니다. 회사에도 아이를 낳고 일하는 여자선배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친정이나 시댁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아이를 함께 케어해줄 여력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애를 키우면서도 그들 중 대부분은 아이 하나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는 분들은 등하원 도우미를 쓰기도 합니다. 그 중 한 분은 경력단절이 걱정되고 본인도 스스로 일하는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아 월급이 통장을 스쳐지나가는 수준이지만 '이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길 선택하신 분입니다. 이제는 거의 혈육처럼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과 잘 지내는 그 분을 주위에서는 모두 부러워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실 등하원 도우미를 쓰다가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흔합니다. 아무래도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뉴스며 기사에서 흉흉한 소식들이 드물지 않게 들려오는 현실에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도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는 실제로 등원 중 아이가 다쳐서 갈등을 겪으신 분도 계셨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이 워킹맘들이 맞는 첫번째 위기라고 하지요. 어린이집, 유치원에 5-6시까지 보육을 맡겼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12시가 되면 점심도 먹지 않고 하교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케어해야 할지 아니면 소위말하는 학원 뺑뺑이라도 돌려서 퇴근시간을 맞춰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육아휴직을 하거나 무급휴직을 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내 아이를 하루 13시간을 맡아주겠다는 늘봄학교

이런 현실을 감안한 것인지 최근 '늘봄학교'라는 정책이 나왔습니다. 

 

올 3월 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되는 '늘봄학교'는 새로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서 봐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방과후수업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시간적인 한계가 있고 교육의 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공교육의 질과 양의 확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의 보육, 교육의 부담을 학교에서 분담해주겠다는 의도는 좋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업무과중을 해소하기 위하여 돌봄교실을 운영할 인력에 대한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사교육비가 부담이 되는 가정에서는 교과과정 외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와 이제 마음놓고 야근할 수 있겠네????

하지만 이제 막 8살이 된 내 아이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맡아주겠다고 해서 두팔 벌려 환영할 워킹맘이 있을까요? 늘봄학교가 있으니까 이제 마음껏 야근해도 되겠네 라고 안도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늘봄학교가 생겼으니 근무외 시간의 업무가 당연시되는 결과를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많은 엄마들이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되는 이유는 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계속 하길 결정한 엄마들에게는 지금도 내 아이를 맡길 많은 선택사항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온전히 돌보고 싶은 마음. 그러나 내가 지금 하는 일과 육아를 온전히 함께 해나갈 수 없는 현실. 두가지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은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

물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많은 워킹맘들이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 여성 1명당 출산율이 1명도 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육아가 더이상 커리어의 장애물이 아닌 함께 병행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제 똑똑한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응당 거쳐야 할 인생의 단계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도 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워킹맘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죄책감을 마음의 한 켠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삼시세끼를 다 먹여주고 하루 13시간을 봐준다는 늘봄학교가 이런 워킹맘들에게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퇴근시간이 되면 늦지 않게 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세요. 아직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부모가 돌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더 신경쓸 수 있도록 근무형태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세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유연근무제, 단축근무제, 재택근무를 확대시행해주세요. 

 

건강한 부모 아래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족들이 많이 모였을때 더 건전한 사회가 되겠지요.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는 워킹맘은 너무 큰  꿈일까요?

저의 큰 아이는 이제 5살입니다. 친구들은 다 5시면 집에 가는데 조금 늦게 어린이집에 도착한 날이면 자기가 마지막이라고 툴툴대곤 합니다. 별 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엄마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한번씩 반차를 쓰고 데이트라도 한 날에는 얼마나 오래도록 그 날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게 될 때 쯤이면 '늘봄학교'가 우리 동네에서도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아이를 저녁 8시까지 학교에 맡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고 싶은 워킹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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